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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모파상

2005.07.27 (06:09:25)

 

사실 사람이란 모든 사람들을 오해하고 있구나!

정말 저 분일까?
수많은 비밀 음성으로 약속되고,
인자하신 신이 이렇게 자기 앞에 던져주신 배우자가 아닐까?
자기를 위해서 창조된 존재,
자기의 생애를 바치려는 사람이 바로 이분일까?
우리는 숙명적인 인간일까?
은은한 애정으로 서로가 잘 조화돼서 미래에 사랑을 이룰 수 있는 두 사람일까?

-모파상, 임해진 역, <여자의 일생>, 청목사, 1994, 39쪽-


* * * *


소녀는 사랑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랑! 그녀의 마음을 사로 잡았던 사랑, 이제는 오직 상대를 만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가슴 설레였습니다(18쪽).

“어떤 사람일까? 사실 자신도 모르고, 또 자신에게도 물어본 일조차도 없었다. 그 사람은 그분, 그것뿐이었다. 그는 오직 자기가 진정으로 사랑하면 그 사람도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할 것이다, 하는 것만 알 뿐이었다”(19쪽).

의미도 모르는 힘이 두 사람의 시선을 만나게 합니다. 마치 어떤 친화력으로 두 사람에게 암시해 주는 듯이 동시에 눈을 떠 올리는 것이었습니다(34쪽).

“서로의 눈 속에서 미지의 세계 속에의 서로를 찾았다. 말없는 집요한 질문으로 서로를 알려고 했다. 두 사람은 앞으로 어찌 될 것인가?”(54쪽)

인간의 마음이란 어떤 이치를 가지고도 캘 수 없는 신비한 것입니다(84쪽). 애정으로 결합된 두 사람이, 갑자기 함께 자본 일도 없다는 듯이 서로가 거의 딴 사람들이 된 것은 무슨 까닭일까?(86쪽)

“인생이 이런 것일까? 우리 서로가 상대를 잘못 택했단 말인가? 자기는 이제 장차 아무런 바램도 없단 말인가?”(86쪽)

* * * *

쟌느는 남편 쥴리앙의 추잡한 행동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백작 부인이 그런 짐승 같은 족속들과 같은 방식으로 오욕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괘씸한 짓이었습니다(150쪽). 그러고 보면 인간은 누구나가 위선자이고, 불성실한 존재인 것입니다(149쪽).

“그러고 보면 인생이란 비참, 슬픔, 불행, 죽음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속이고 거짓말하고, 괴롭히고 슬프게 만든다. 안식과 기쁨을 다만 조금이라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아마 저승에서?”(159쪽)

어렸을 때에는 부모에게, 결혼해서는 남편에게, 늙어서는 자식에게 당하고만 살아왔던(97쪽) 쟌느는 늘 입버릇처럼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자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242쪽). 쟌느는 탕자 아들이 어머니에게 버리다시피 맡긴 갓난 아기를 꼭 껴안고 키스를 퍼 붓습니다. 그녀는 손녀에게 애정과 희망을 갖지만, 또 비극적 운명의 그늘이 숨어 있는 듯 합니다. 충직한 하녀는 이런 말을 남깁니다.

“알고 보면 인생이란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한 것도, 불행한 것도 아니로군요”(252쪽).

비관적인 인생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모파상은 허다한 인간의 추잡한 가면을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있는데, 독자들도 쟌느와 함께 매혹적인 바다로 끌려들어갈 겁니다.

“25년 동안의 그녀의 위대한 이웃 사람, 해풍과, 풍랑과, 열풍을 가진 바다, 아침마다 레 쁘뿔의 창으로 내다보던 바다, 밤이나 낮이나 호흡하고 간접적으로나마 친근하게 느끼고, 모르는 동안에 인간을 대하는 것처럼 사랑을 느끼고 있었던 바다, 그 바다였다”(227쪽).

해설

1 사실주의

블룸은 <교양인의 책 읽기>(해바라기, 2004)에 모파상의 단편을 소개한 뒤에 프랑스의 비평가인 파게(1847-1916)의 경구를 옮겨놓습니다.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 생각하는 것, 다른 사람의 것을 이해하는 것, 그기 우리에게 시사하여 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교양인의 책읽기> 53쪽).

무엇을 쓸 것인가 책을 뒤척이다가 고민하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모파상과 함께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가 뭘 말하려는 것인지, 독자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 혼잡스러운 생각들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는 작업입니다. 자기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 마음에도 흡족하게 정리해 놓는 일입니다. 밖에는 비가 옵니다. 여자의 일생도 그렇게 시작합니다. 쟌느가 수도원의 기숙사를 떠나 자유의 몸이 되어 꿈에 그리던 인간의 행복을 지금 막 손을 뻗쳐 잡으려는 순간입니다(7쪽).

“쟌느는 자신의 짐을 꾸린 후 창가로 가 보았으나, 비는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7쪽).

<여자의 일생>(원제는 <어느 생애 Une Vie>)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여자의 일생> 마지막은 하녀 로쟈리의 말로 끝납니다.

“알고 보면 인생이란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한 것도, 불행한 것도 아니로군요”(252쪽).

시작과 끝 사이의 공간, 그것은 모파상이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삶의 공간입니다. 비극적인 인간이지만 그다지 비극적이라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삶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아무리 인간의 삶이 비극적이라 하더라도 더 이상 비극적일 수 없는 것은 잠시 세상에서 고통스럽고 역겨운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도 변치 않는 영원한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쟌느는 황홀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삼라만상의 장엄을 대하고, 걷잡을 수 없는 환희와 무한한 감동에 넋을 잃어서 곧 쓰러질 것 같았다. 태양은 나의 것이요, 나의 여명이다. 내 생활의 시발이요, 내 희망의 첫 출발인 것이다!”(20쪽).

자연이 펼치는 위대한 스펙터클을 보며 너무 기쁜 나머지 울고 말았다는 것, 이러한 감동을 누리지 못하는 게 비극적인 인생보다 더 비극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태양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으며, 태양을 껴안고 싶은 충동에서 그녀는 공간을 향해서 두 팔을 벌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마음뿐인 무기력한 상태에서 멍청히 서 있었다. 그러므로 양 손에 얼굴을 묻어버리고 너무 기쁜 나머지 울고 말았다”(20쪽).

비극적 운명이 그다지 비극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기법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비시키는 것입니다. 대단히 모파상적이지요.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노라면 추한 것도 비극적인 것도 그 아름다움에 자취를 숨겨버립니다. 무의식 중에 입에 담은 한 마디, “아! 바다가 보고 싶구나”라는 말이 쟌느의 불안한 마음의 비밀을 탄로나게 했다는 겁니다.

“그렇게도 마음에 부족했던 것, 그것은 그 바다였다. 25년 동안의 그녀의 위대한 이웃 사람, 해풍과, 풍랑과, 열풍을 가진 바다, 아침마다 레 쁘뿔의 창으로 내다보던 바다, 밤이나 낮이나 호흡하고 간접적으로나마 친근하게 느끼고, 모르는 동안에 인간을 대하는 것처럼 사랑을 느끼고 있었던 바다, 그 바다였다”(227쪽).

2 여자의 일생

1891년 5월 2일 노르망디 지방, 남작의 외동딸인 쟌느는 5년간 수도원의 기숙사 생활을 마치고 영원히 자유의 몸이 되어 꿈에 그리던 모든 행복을 지금 막 손을 뻗쳐 잡으려는 열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비가 밤새도록 마구내렸고, 창가에 가 보았으나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소설이 시작하면서 묘사한 비는 쟌느의 비극적 운명을 암시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므로 어제 밤부터 계속 내리는 비는 쟌느 생애 중 최초의 커다란 슬픔이었다”(10쪽).

물론 자연의 섭리는 인간의 비극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지만, 괴롭고 슬픈 인생에게 초연적인 마음을 갖게 해 줍니다. 이러한 서술 방식에는 비관적인 사실주의를 극복하는 저자의 의도가 깔려 있는 겁니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나요? (물론 보봐르의 말이 옳아서가 아니라, 단지 <여자의 일생>에 인용한 것뿐입니다.) 어린 쟌느의 운명, 그리고 순수한 사랑에 대한 염원은 아버지의 의도에서 시작한 것임은 부인하기 어려운 일이겠지요.

“이론가인 남작은 행복하며, 선량하고, 정직하고, 상냥스럽게 딸을 키우기 위해 일계율의 교육 방침을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12세까지만 집에서 살고 그 후는 어머니의 눈물도 아랑곳없이 성심 수도원 기숙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부친은 딸을 그곳에 엄중히 가두어 놓고 속세와 격리시켜 놓음으로써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했으며 사람들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며 또한 세상사도 전혀 모르게 한 것이다. 그 후 17세가 되었을 때, 청정무구(淸淨無垢)한 채로 자기에게 돌려 보내 줄 것을 부친은 희망한 것이었다”(8쪽).

시몽 쟈크 빼르뛰이 데 보오 남작은 전 세기의 괴벽하고 사람 좋은 귀족이었고, 루소의 열렬한 숭배자로 모든 자연에 대해 여인과 같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8쪽).

“남작의 큰 힘도 되고 또한 큰 약점도 되는 것은 선량하다는 것이었다. 애무하고 도와주며 포옹하기에는 몇 개의 팔이 더 있어도 부족할 만큼 선량하다는 것이었다. 조물주적 선량성, 산만하며 저항력 없는 의지의 힘이 어딘가 한 군데 마비된 것 같은, 혹은 강력한 힘이 무언지 결핍되어 있는 것 같은, 거의 일종의 악덕이라 평할 수 있는 것이었다”(8쪽).

소녀는 오랫 동안 사랑을 그려왔습니다. 이제는 오직 꿈에 그리던 상대를 만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18쪽). 귀부인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정열적인 용모를 가진 귀족, 뭇여성들이 연모하는 이상형이지요. 이런 남자의 눈은 사려깊은 매력이 있고 아무런 대수롭지 않은 말도 그럴듯한 의미를 주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여자들은 잘난 사내라고 보았기 때문에 결국 실패하는 거랍니다(122).

“자작은 여자들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형이 되지만, 모든 남성들에게는 불쾌감을 일으키는 풍모를 가지고 있었다”(30쪽).

나중에 쟌느가 생각했던 것처럼, 사실 사람이란 모든 사람들을 오해하고 있는 겁니다(141쪽). 묘한 친화력이 젊은 두 사람의 시선을 만나게 하는 겁니다(34쪽).

“왜냐하면 두 사람 사이에는 이미 남자가 못나지 않고, 여자가 아름다울 경우에 당연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애정이 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서로가 가깝게 있다는 것이 행복하게 느껴졌다”(34쪽).

수많은 비밀 음성으로 약속되고, 인자하신 신이 이렇게 자기 앞에 던져주신 자기를 위해서 창조된 존재, 자기의 생애를 바치려는 사람, 숙명적인 배우자(39쪽). 이렇게 해서 쟌느는 결혼한 것입니다. 새벽부터 지금까지의 사건이나 움직임이나 사물의 연속이 그녀로서는 꿈만같이 느껴졌고, 에워싸고 있는 모든 것이 전혀 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52쪽).

“들에서 지내는 동안, 많은 것을 알았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사랑의 시적인 면 외엔 별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깜짝 놀랐다. 아내가 된다고? 벌써 된 것이 아닐까?”(54쪽)

결혼하던 날 아버지는 마지막 비장한 각오로 이제는 쟌느가 “남편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새기며 자기의 사명을 완수했다는 듯이 말합니다.

“딸이란 마음까지 순결해야 한다. 부모가 딸의 행복을 맡아 줄 남자의 팔에 안겨 줄 때까지는 완전무결하게 순결해야만 한다. 인생의 감미로운 비밀을 가려놓은 베일을 벗기는 것은 그 남자의 할 일이다”(57쪽).

첫날 밤 남편은 짐승 같은 행위로 난폭하게 쟌느를 소유하고, 잃어버린 소중한 기대, 허무하게 사라진 행복의 환멸에서 영혼까지 절망하며, 그녀는 이게 아내가 된다는 것이었구나(62쪽), 라고 중얼거립니다.

“쟌느는 남편과의 사이에 어떤 장벽이나 장애물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두 사람은 절대로 영혼이나 마음의 저 밑바닥까지 뚫고 지나갈 것 같지가 않다는 것도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란히 걸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얽히기도 하지만 결코 서로가 녹아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인간 각자의 정신적 존재는 영원히 고독한 것이라는 것도 깨달았다”(69쪽).

차차 저 먼 세계를 꿈꾸는 듯한 마음은 사라져 가고, 습관이란 것이 그녀의 생활 위에 마치 어떤 물이 어떤 물건 뒤에 남기는 석회분처럼 체념의 층을 덮어버립니다(85쪽).

“자기 배역을 끝낸 배우가 본래의 자기 얼굴로 돌아가듯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뒤부터는 별로 관심이 없었으며 말을 건네는 일도 없었다. 사랑의 흔적은 모두가 홀연히 떠나가버렸다”(85쪽). 인간의 마음이란 어떤 이치를 가지고도 캘 수 없는 신비한 것이지요(84쪽). 애정으로 결합된 두 사람이, 갑자기 함께 자본 일도 없다는 듯이 서로가 거의 딴 사람들이 되는 것, 인생이 이런 것일까? 서로가 상대를 잘못 택했단 말인가?(86쪽)

“어쩔 수 없어. 인간은 당해야 하는 거야”(97쪽).

남편의 새로운 탐욕의 증세가 나타날 적마다 그녀의 가슴은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98쪽). 돈만 밝히는 남편 때문에, 추위로 견딜 수 없는 냉기가 뼛속까지 파고 들자 죽음의 공포에 떨며(108쪽), 죽기 전에 꼭 남편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에서 남편의 방으로 뛰어들었다가 남편의 머리와 나란히 베개 위에 놓인 하녀 로쟈리의 머리를 보고 놀라서 도망쳐 나옵니다.

“그러나 쥴리앙은 누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는 듯이 핏대를 올리면서 부인하고, 맹세하며 증인으로써 신의 이름을 불렀다. 게다가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 쟌느는 올바른 정신이 아니라는 둥, 방금 뇌막염 발병 초기에 정신착란증을 일으켜서 어느 날 눈속으로 뛰어나갔던 것이 아니냐?”(115쪽)

쥴리앙은 시침을 잡아떼면서 도리어 장인을 고소하겠다고 위협하는데(116쪽), 날이 밝자 쟌느는 사제를 불러달라고 합니다(117쪽). 사제는 아버지에게 쥴리앙이 한 것도 남들이 다 하는 짓을 한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소위 충실하다는 남편도, 인간은 누구나가 다 같은 짓을 한다고 하며 남작(아버지)에게 확인합니다.

“어떻습니까? 남작 자신께서도 가끔 장난을 하셨죠. 자 가슴에 손을 얹고 잘 생각하면 긍정이 가실 테죠?”(121쪽)

남작은 우두커니 서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자기의 행위가 처벌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해 본 일이 없었는데, 어째서 쥴리앙의 행위만을 그처럼 엄중하게 다루려는 것인가?”(122쪽) 선량한 사제는 쟌느에게 부탁합니다.

“부인 용서란 항상 필요하답니다. 지금 당신은 큰 불행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은 대자대비하시기 때문에 큰 행복으로 불행을 걷어가 주실 겁니다. 부인, 장차 어머니가 됩니다. 그애의 이름으로 쥴리앙을 용서하십시오”(123쪽).

쟌느는 무서운 경련에 사로잡혔습니다. 난 이제 죽었구나! 하고 속으로 외칠만큼 맹렬한 경련이 일자, 반항심이, 저주하고 싶은 마음이 가슴에 가득찼습니다. 자기를 파멸시킨 이 남자와 자기를 죽이려던 낯모를 어린애에 대한 증오가 치밀어 올랐던 것입니다(129쪽). 아랫배가 텅 빈 느낌과 함께 일시에 고통이 사라지면서 갓난애의 울음소리가 파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몸을 꿰뚫을 듯한 환희의 섬광이었다. 막 잡으려는 새로운 행복에의 비약이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해방되고, 진정으로 행복해졌다. 여태까지 느껴 보지 못했을 만큼 행복했었다. 어머니가 된 것을 느낀 것이다”(130쪽).

모파상의 사실적인 묘사가 대단히 놀랍지요. 출산의 사실적 고통과 뒤를 이은 환희, 인류를 낳은 위대한 어머니의 특권을 쟌느도 어쩔 수 없이(운명적으로) 누리는 겁니다.

“자기의 자식! 그녀는 열광적인 어머니가 된 것이다. 사랑에 환멸을 느끼고 희망이 무너졌으니 더욱더 열광적인 어머니가 된 것이다”(130쪽).

그러나 쥴리앙은 시끄럽게 울어대는 폭군의 출생으로 자기의 지배적인 세력이 축소되고, 자기의 지위를 박탈해 간 이 인간에 대해서 무의식적으로 질투를 느끼면서, 저 새끼가 나오고부터는 정말 귀찮아졌어! 하고 못 참겠다는 듯이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131쪽). 쥴리앙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지도 않았고, 남편에 대해서는 어떤 일이고 무관심해졌습니다(149쪽). 이제는 여자의 소망이 자식에게 넘어갈 때가 되었네요. 쟌느는 오직 뽀올만이 행복의 샘이라고 생각했습니다(138쪽).

“참 이상하죠. 어쩌면 이제 남 같은 기분이어요. 그의 아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군요. 그러니까 이렇게, 저 분의••••저 분의 추잡한 행동에 조소하고 있는 거죠”(134쪽).

어느 날 쟌느는 첫 사랑의 추억에 잠기며 그 숲으로 가게 되는데, 거기에 쥴리앙과 백작 부인의 말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147쪽). 인간은 누구나가 위선자이고 불성실하다고 생각하고,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모든 애정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생각하겠다는 마음의 각오를 했지만, 백작 부인의 배신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괘씸한 짓이었습니다(149쪽).

“그리고 쟌느가 지베르뜨에게 화를 냈다면, 그것은 자기 남편을 가로 채어 가서가 아니라, 지베르뜨 역시 그런 일반적인 오욕에 빠졌다는 사실, 그 자체였었다. 그 여자만은 저속한 시골뜨기와 같은 족속이 아닌 줄 알았는데, 어째서 그런 짐승 같은 족속들과 같은 방식으로 오욕에 빠질 수 있단 말인가?”(150쪽)

20년간 병마에 시달리던 어머니가 죽자, 쟌느는 불쌍한 어머니의 손을 쥐고 앉아 밤샘을 합니다. 언젠가 딸에게 편지를 간직하지 말고 모두 태워버리도록 하라는 한 적이 있었는데(153쪽), 정답고 이상스런 생각에 어머니에 온 편지를 읽어봅니다. 미친 듯한 사랑의 고백과 밀회의 약속, 그리고 끝에 가서는 언제나 “반드시 읽고 난 후에는 소각시켜 주십시오”라는 말이 따랐습니다(162쪽).

“그러고 보면 인생이란 비참, 슬픔, 불행, 죽음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속이고 거짓말하고, 괴롭히고 슬프게 만든다. 안식과 기쁨을 다만 조금이라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아마 저승에서?”(159쪽)

모범적이며 검소하며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던 어머니(12쪽), 앞서와 같은 경건한 입술로 키스를 할 수 있을까?(162쪽) 모파상은 당시 사회를 사실적으로 고발하고 있으니, 쥴리앙이 하여와 놀아났을 때 신부가 한 말을 다시 상기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근처의 계집애들은 모두 다 저 꼴이니 한심한 일이죠. 그렇지만 속수무책이랍니다. 인간의 본능에 대한 약점은 어느 정도 관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애를 배지 않고

시집을 가는 계집애는 하나도 없으니 말입니다. 부인”(120쪽).

요즘이나 그 때나 별 차이가 없지요. 별 차이란 아이가 배에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정도일 겁니다. 백작은 부인의 불륜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이 밀회하는 이동식 오두막집을 경사지 꼭대기에서 밑으로 굴려버립니다(185쪽).

“이젠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자식들은 커서 자기를 사랑해 줄 테지. 자기는 남편의 일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조용히 만족하게 늙을 것이다”(172쪽).

쟌느의 눈으로 볼 때는 자식은 언제나 갓난애처럼 보였습니다. 어린애가 어른처럼 걸어다니고 뛰어다니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여간해 눈에 띄지 않는 겁니다(193쪽). 아들 뽀올은 15살이 되었지만, 두 여자와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을 만큼 선량한 노인 사이에 끼어서 지능의 발달이 억압당해 아무것도 몰랐고, 머리도 둔했습니다(196쪽). 남작의 말처럼 이 애가 25세가 되어서 ‘어머니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애정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거여요’하고 항의한다면 대답할 말이 없겠지요(197쪽).

“쟌느, 넌 이 애의 생활을 네 맘대로 처리할 권리는 없다. 네가 하자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그것은 죄가 된다고도 할 수가 있다. 넌 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자식을 희생시키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198쪽).

뽀올은 먼 곳으로 중학교에 보내지만, 얼마 안 지나 창녀와 함께 도망하여 살게됩니다. 방탕과 투기와 사업 실패로 지게 된 빚 때문에 쟌느는 그 많은 재산과 살던 집까지 정리하여 보냅니다. 남편의 아이를 낳아 멀리 시집 보낸 하녀 로잘리이 돌아와 쟌느를 도와줍니다. 쟌느는 아들을 찾아 나섰지만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쟌느는 과거의 추억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고정 관념에 쫓기고 대수롭지 않는 일에 시달리는 때가 자주 있었다. 극히 사소한 일이 그 여자의 병적인 머리 속에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되는 것이었다”(240쪽).

쟌느는 늘 입버릇처럼 “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했다”(242쪽)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쟌느는 자신이 집요한 불운에 직접 쫓기고 있다고 단정함으로써, 마침내는 동양인 같은 숙명론자가 되어버렸다. 자기의 꿈이 사라지고, 희망이 허물어지는 것을 항상 보아온 습관이, 아무런 새로운 계획도 세우지 못하게 하고, 아무리 간단한 일을 수행할 때라도 자기는 언제나 불운한 길로 들어간다, 그것은 좋지 않은 방향으로 돌아간다, 하는 신념이 그 앞에서 며칠이나 망설이는 것이었다”(242쪽).

도망 갔던 아들에게서 자기 아내는 여아를 분만하고 죽어가고 있으며 동전 한 닢도 없어 아이더 죽어갈지 모르니 어머니가 맡아서 키워달라는 서신이 옵니다. 하녀 로쟈리가 가서 딸을 데려오는데, 마차에서 쟌느의 무릎 위에서 잠들고 있는 아기의 체온이 느껴집니다. 무한한 감동이 쟌느의 온 몸으로 파고 들었고, 아기가 파란 눈을 떴을 때, 쟌느는 품안에 들어올려 꼭 껴안고 키스를 퍼 붓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쟌느의 사랑, 희망, 삶은 손녀 딸에게 넘어갑니다. 로쟈리가 마지막으로 무뚝뚝하면서 즐거운 낯으로 하는 말은 모파상이 <여자의 일생>을 사실적으로 요약하고 싶었던 말일 겝입니다.

“알고 보면 인생이란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한 것도, 불행한 것도 아니로군요”(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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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유경 얼마전에 푹빠져 읽었던 책이라 해설이 쉽게 읽히며 공감이 됩니다. 이 삶이 모파상의 어머니의 삶을 묘사한 것이라고도 하지요. 모파상의 어머니는 그의 아버지와 이혼한 것이지만. 여기서는 줄리앙이라는 인물을 죽는 것으로 하지요. 아무튼 어찌 보면 비현실적인 것 같은데 또 생각해보면 그런 삶이 없으리라고도 말 못 할 것 같아요.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 진정한 행복이 존재할까요? 잔느가 결혼하기 전의 그 감수성과 세상을 보는 신비스러운 눈 그것이 삶을 살아가며 쇠퇴하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가슴 아팠습니다. 저 또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가며 그렇게 잃어 가는 것이 있는 것 같아서... 삭제